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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 인생의 엇박자, 가족이라는 잔상, 늦어버린 대답

by kimibomi 2026. 1. 3.

걸어도 걸어도 사진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가족의 얼굴에서 문득 낯선 타인의 서늘함을 느낄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나는 명절이나 기일처럼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영화 걸어도 걸어도가 보여주는 그 집요하고도 담담한 인생의엇박자를 떠올리며 내 곁의 사람들을 가만히 응시하곤 한다. 이 영화는 죽은 장남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가는 한 가족의 하루를 통해, 서로 사랑하면서도 끝내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이라는잔상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늘 한 발짝 늦게 도착하는 늦어버린대답은 우리에게 삶이란 완벽한 화해가 아니라, 그저 서로의 다름을 견디며 함께 걷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오늘은 이 정갈하고도 깊은 울림의 영화가 나의 가치관과 가족이라는 관계에 남긴 기록들을 정리해 보려 한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서 통찰하는 인생의 엇박자

영화는 "인생은 언제나 한 발짝 늦는다"는 명대사를 통해 우리 삶에 산재한 인생의엇박자를 통찰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야 비로소 해드리고 싶었던 것들이 생각나고, 관계가 끝난 뒤에야 진심이 담긴 말이 떠오르는 그 기막힌 타이밍의 어긋남은 우리 모두의 비극이자 일상이다. 나 역시 부모님의 잔소리가 그리움으로 변한 뒤에야 그분들의 진심을 이해하게 되었던, 그 쓰디쓴 엇박자의 순간들을 기억한다. 인생의엇박자는 우리에게 오늘을 대하는 겸손함을 가르쳐준다. 주인공 료타가 부모님과 함께 가려 했던 축구장이나 나란히 타고 싶었던 차는 결국 실현되지 못한 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나도 '다음에 하면 되지'라고 미뤄두었던 수많은 다정함이 결국 돌아오지 않는 기회가 되었음을 깨닫고 가슴을 쳤던 적이 있다. 영화는 우리가 잡으려 애쓰는 내일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과 나누는 시시콜콜한 대화가 훨씬 더 본질적인 삶의 조각임을 역설한다. 결국 인생의엇박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성숙의 과정이다. 모든 것을 제때 해결하려 하기보다, 조금 늦더라도 그 엇갈림 자체를 인생의 리듬으로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용서할 여유를 얻는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내 삶의 박자가 타인과 맞지 않는다고 초조해하기보다, 그 어긋남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불협화음조차 내 인생의 소중한 멜로디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생은 정박자로 흐를 때보다 엇박자로 흐를 때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가족이라는 잔상

식탁 앞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는 영화 속 풍경은 가족이라는잔상이 가진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아픈 상처를 주는 모순, 그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의 실체다. 나 역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장 큰 안식을 얻으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서 가장 숨 막히는 고독을 느꼈던 복잡한 감정의 파고를 경험한 적이 있다. 가족이라는잔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지배한다. 죽은 아들을 살리려다 살아남은 청년을 매년 기일에 불러 고통을 되새기는 어머니의 집착은, 상실이 남긴 잔상이 산 자들의 삶을 얼마나 지독하게 옭아매는지 보여준다. 나도 내 부모님이 품고 있는 과거의 상처가 어떻게 내 삶에 투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또 어떤 잔상을 내 아이들에게 남기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그림자를 밟으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영화는 가족이라는잔상을 억지로 지우려 하지 않는다. 옥수수 튀김의 냄새, 노랑나비에 얽힌 전설처럼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모여 가족이라는 유대를 지탱한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완벽한 화합을 꿈꾸기보다, 서로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것이 가족의 진짜 역할임을 배웠다. 가족은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저 그 존재 자체로 견뎌내고 사랑해야 할 운명 공동체다.

늦어버린 대답

영화의 끝에서 료타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야 그분들이 원했던 사소한 일들을 떠올리며 늦어버린대답을 삼킨다. 이미 대답을 들을 사람은 곁에 없지만, 그 뒤늦은 깨달음이 료타를 다시 살아가게 한다. 나도 사랑한다는 말이나 미안하다는 사과를 제때 하지 못해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있는데, 영화는 그 늦어버린 마음조차도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슬픈 양분이 된다고 위로한다. 늦어버린대답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사람들을 향한 태도를 수정하게 만든다. 료타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했던 이야기를 전해주는 장면은, 비록 대답은 늦었을지라도 그 마음만큼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나 역시 부모님께 드리지 못한 대답을 이제는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대신 전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사랑은 결코 증발하지 않고,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피어난다. 걸어도 걸어도는 나에게 "당신은 오늘 누구에게 대답을 남겼는가"라고 묻는다. 인생의엇박자 속에서도 꿋꿋이 걸어가고, 가족이라는잔상을 따뜻하게 껴안으며, 늦어버린대답을 가슴에 새기고 오늘을 살아가는 삶.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인생이란 거창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늘 한 발짝 늦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걸어도 걸어도' 계속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임을 배웠다. 영화는 료타 가족이 부모님의 묘소를 참배하고 내려오는 뒷모습을 비추며 끝을 맺는다. 늦어버린대답을 가슴에 품은 그들의 발걸음은 쓸쓸하지만 단단하다. 오늘 당신의 가족은 안녕한가요? 혹시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당신의 진심을 자꾸만 내일로 미루고 있지는 않은가. 료타처럼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후회하기보다, 오늘 당장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해 보시길 바란다. 당신의 그 작은 대답 하나가 우리 인생의 엇박자를 가장 아름다운 화음으로 바꿔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