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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길티 캐릭터 해부하기 (경찰, 죄책감, 정체성붕괴)

by kimibomi 2026. 1. 11.

더길티 사진

2018년 개봉한 덴마크 영화 《더 길티(The Guilty)》는 제한된 공간, 단 두 시간 남짓의 러닝타임, 그리고 오직 전화 통화만으로 극한의 몰입감과 긴장을 만들어낸 수작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힘은 주인공 ‘아스거’라는 인물의 내면 심리에 있습니다. 경찰이자 인간으로서 그가 겪는 죄책감, 정체성의 붕괴, 판단의 오류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의 머릿속에 오래 남습니다. 이 글에서는 《더 길티》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심리적 흔들림, 도덕적 책임,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의 직업 정체성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직접 겪었던 ‘책임감’의 무게와, 판단 하나로 인생이 달라지는 상황을 경험한 일화도 함께 녹여 보겠습니다.

더 길티 속 경찰이라는 직업의 딜레마

아스거는 영화 초반부터 긴장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평소 근무하던 현장 순찰이 아닌, 112 긴급 신고센터에 임시 발령되어 전화를 받고 있습니다. 사건 현장에 나가지 못하는 불편함, 그리고 그가 지닌 뭔가 ‘숨기는 듯한 과거’는 영화의 분위기를 무겁게 끌고 갑니다. 이 영화가 특히 흥미로운 점은, 아스거가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려는 경찰’이 아니라,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인간으로 묘사된다는 점입니다. 그는 전화를 통해 한 여성의 납치 사건을 접하고, 구조를 시도하지만, 그의 모든 판단은 전화기 너머의 정보에 기반한 ‘추측’입니다. 문제는 그 추측이 틀렸다는 것. 그는 자신의 판단과 개입으로 인해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결과적으로 큰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 순간 아스거는 경찰로서의 ‘기능’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불완전함을 드러냅니다. 저도 과거, 프로젝트 리더로 일하던 당시 팀원이 제출한 문서를 서둘러 ‘내가 맞다고 생각한 기준’으로 수정해 보고서에 반영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었고, 고객사에 큰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책임을 진다는 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과 싸우는 일이다.” 아스거 역시 그런 착각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의 실수는 무능이 아니라, 도움을 주고자 한 선의가 잘못된 방식으로 실행된 결과였습니다. 이 영화는 경찰이라는 직업이 갖는 무게와 딜레마를 리얼하게 보여줍니다.

죄책감의 무게

영화 속 아스거는 단순히 납치 사건에만 몰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다른 사건으로 인해 곧 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가 ‘현장에 있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 사건 때문이며, 그 사건이 무엇인지는 영화 후반부에 드러납니다. 그가 겪는 죄책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흔드는 무게입니다. 한때 영웅이었을지도 모를 그는, 지금은 불신과 자기혐오 속에서 자신을 겨우 붙잡고 있는 상태입니다. 납치 사건에 그토록 몰입한 이유도 어쩌면 ‘다시 한번 자신이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구원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 순간, 아스거는 울음을 터뜨리며 말합니다. “나도 사람을 죽였어.” 이 고백은 단순히 과거의 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한 인간의 절규입니다. 그는 구조요원인 동시에, 심판자이자 죄인이 됩니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경찰과 범인의 경계를 흐리고, 우리 모두가 ‘어떤 상황’에서는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 장면을 보며 저는, 과거 가까운 지인을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상처를 주고 관계가 틀어진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선한 의도로도 결과가 나쁠 수 있고, 의도가 좋았다고 해서 면죄부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더 길티》는 바로 그 잔혹한 사실을 강요합니다.

정체성 붕괴의 순간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아스거는 ‘누구를 구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 앞에 놓이게 됩니다. 처음엔 납치된 여성 ‘이베’를 구하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녀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아이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즉, 구조 대상이 바뀌는 순간, 아스거는 자신의 역할에 혼란을 겪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그는 정의로운 경찰이 아닙니다. 그는 혼란 속에 있는 사람이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로 몰립니다. 이 과정은 곧 정체성의 붕괴로 이어집니다. 그는 구조자에서 죄인으로, 판단자에서 오판자로 변하며, 영화는 아스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이 무너짐을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커리어 초기에 맡았던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실수를 한 후,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정체성이 흔들릴 때 우리는 일도, 관계도, 심지어 삶의 방향도 잡지 못하게 되죠. 그 감정의 파도를 영화는 숨 막히게 밀도 있게 보여줍니다. 《더 길티》의 가장 큰 미덕은 이 모든 것을 오직 ‘목소리’와 ‘표정’, ‘정적’으로 전달한다는 점입니다. 관객은 아스거의 감정 속으로 끌려들고, 그 무너짐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인간의 무너짐에 대한 철학적 성찰입니다. 《더 길티》는 전화 통화 하나로 시작된 사건이 한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심리 드라마입니다. 아스거라는 캐릭터는 경찰, 구조자, 죄인, 인간이라는 여러 얼굴을 오가며, 우리 모두가 언제든 실수하고, 흔들리고, 후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모두 ‘더 길티’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자신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직업으로 포장된 정체성, 판단의 착각,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무게. 그 안에 진짜 나의 모습은 어떤가요? 마지막 장면에서 아스거가 고백을 하고, 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는 순간, 우리는 그의 죄가 아니라, 용기가 더 크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 역시 스스로의 ‘내면의 용기’를 꺼낼 준비가 되었는지 묻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