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스웨덴 영화 《더 스퀘어(The Square)》는 단순한 예술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현대 예술이라는 세계가 직면한 불편한 진실과 위선,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의 공공성’이 실제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냉철하게 드러냅니다.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는 ‘더 스퀘어’라는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도덕성, 계급, 위선, 책임감, 도전을 도발적으로 시험합니다. 본 글에서는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 오늘날 예술이 갖는 사회적 역할과 책임, 그리고 불편함을 마주하게 하는 예술의 존재 이유를 깊이 있게 해석해보려 합니다. 이 글은 제가 미술 전시 기획 현장에서 겪었던 경험과 함께 엮어, 더 스퀘어가 왜 강렬한 불편함으로 우리를 흔드는지, 그리고 그 불편함이 예술의 핵심 역할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더스퀘어의 불편한 예술
《더 스퀘어》의 중심은 미술관의 큐레이터 크리스티안이 준비하는 공공 예술 프로젝트 ‘더 스퀘어’입니다. “더 스퀘어는 신뢰와 돌봄의 성역입니다. 그 안에 있는 누구든 동등한 권리를 갖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언뜻 보기에 고귀한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이상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공허하고 위선적일 수 있는지를 파고듭니다. 크리스티안은 소매치기를 당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한 아이의 가정에 협박성 쪽지를 보내는 등, 예술적 가치와는 거리가 먼 행동을 반복합니다. 동시에 그는 미술관에서는 윤리와 정의, 공공성을 말합니다. 이 이중적인 모습은 영화가 비판하는 핵심입니다. 예술가와 예술 제도, 기획자, 관객 모두가 스스로의 ‘윤리적 자아’에 도취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불편한 현실과의 충돌을 피하고 있음 을 보여주는 것이죠. 제가 과거 서울에서 진행된 한 현대미술 전시 프로젝트에서 관객 인터랙션 설치작품을 기획했을 때였습니다. 작품은 ‘당신의 불편함을 적어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설치된 공공 게시판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관람객 대부분은 아무 글도 적지 않았고, 오히려 스태프에게 “이건 왜 설치했냐”, “이건 예술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사람들은 불편한 질문을 싫어하고, 그 불편함이 예술의 본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피하려 한다는 사실을요. 《더 스퀘어》는 예술이 무엇을 해내야 하는지를 묻는 영화입니다. 공감을 얻기 위한 감상적 예술이 아니라, 도전하고 충돌하며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것. 그 자체가 예술의 본질일 수 있습니다.
도덕의 실험실로서 예술: 우리는 정말 돕는가?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는, 바이럴 마케팅 영상에 대한 논란입니다. 어린 소녀가 ‘더 스퀘어’ 조형물 위에서 폭발하는 장면을 연출해 자극적인 관심을 유도하고자 했고, 이는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불러옵니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 실패가 아닙니다. 예술이 도덕을 실험하는 공간으로 기능할 때, 우리는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장치입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한 장애인 남성이 미술관 앞에서 구걸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지나갑니다. ‘더 스퀘어’ 안에서는 모두가 동등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아무도 그 남성을 돕지 않습니다. 이 극단적인 대비는 영화가 내세우는 핵심 아이러니입니다. 도덕적 구호는 예술을 통해 반복되지만, 현실에서는 실천되지 않는다. 실제로 제가 참여했던 한 공공예술 프로젝트에서, 노숙인을 인터뷰하고 그 목소리를 미술관 공간에 녹음으로 담는 작업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관람객 중 일부는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어떤 이들은 “그냥 불편하다”라며 빨리 지나치기도 했습니다. 예술은 현실을 말하려고 했지만, 현실은 예술을 피했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간극을 예리하게 드러냅니다. 《더 스퀘어》는 예술을 하나의 도덕적 실험실로 만듭니다. 그리고 관객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돕는다고 말하지만, 정말 돕고 있습니까?” 그 질문이 바로 이 영화가 던지는 진짜 예술적 충격입니다.
공공성과 위선: 우리는 왜 예술을 소비하는가?
《더 스퀘어》는 예술의 공공성을 진지하게 질문합니다. 공공 예술이란 이름 아래 사람들의 기부를 유도하고, 윤리와 정의를 말하지만, 결국 그 공간과 담론은 엘리트와 기관의 상징 자본으로 귀속됩니다. 크리스티안은 그 공공 예술 프로젝트의 주체지만, 정작 프로젝트의 이상을 자신의 삶에 실천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는 사과 영상도 자신이 아닌 스태프를 내세워 보내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회피합니다. 공공성을 말하는 예술가가 실제로는 공적인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는 이중적 태도를 영화는 냉소적으로 드러냅니다. 저 역시 미술 기획자로 일하면서, 정부 공모전이나 기업 스폰서를 받을 때 ‘사회 환원’, ‘도시 재생’, ‘지역 공공성’ 같은 키워드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예산 절감, 기관 홍보용 전시로 축소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예술이 공공성을 말할 때, 진짜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는가? 《더 스퀘어》는 예술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물음을 던집니다. 당신은 그 예술을 공감하려 했는가, 아니면 소비하고 지나치려 했는가? 예술은 본래 사람을 흔드는 것이고, 때로는 무력감을 느끼게 하며, 때로는 불편함 속에서 우리의 위선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이 영화는 그것을 잊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스퀘어》는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것이 과연 현실의 도덕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그리고 진정한 공공성이란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묻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감동이나 위로가 아니라, 불편함과 아이러니, 그리고 자기반성을 통해 예술의 역할을 되묻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예술이란 결국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며, 그 질문이 때로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때 가장 예술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예술이 해야 할 역할은 편안함이 아니라 도전, 공감이 아니라 비판,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편함 속에서도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힘일 것입니다. 《더 스퀘어》는 바로 그 예술의 본질을 마주하게 합니다. 당신은 지금, 그 질문 앞에서 어떤 답을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