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룩업(Don’t Look Up)’은 겉으로 보기엔 블랙코미디처럼 가볍게 흘러가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매일 보고 스쳐 지나가는 현실의 단면이 너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누구라도 긴장해야 할 소식 앞에서 사람들은 무덤덤하고, 뉴스는 그 사실을 자극적인 엔터테인먼트로 포장하며, 정치권은 이해득실을 먼저 계산한다. 이 모든 장면은 과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이미 너무 익숙해져 버린 풍경에 가깝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중심 메시지인 ‘현대 사회의 무감각함’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우리가 왜 점점 더 큰 사건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영화가 그 무감각을 어떤 방식으로 비틀고 흔들어 깨우는지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결국 이 영화는 혜성보다 더 무서운 건 ‘위험을 위험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인간의 감정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돈룩업이 보여주는 현대 사회
‘돈룩업’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믿기 힘든데 또 너무 현실 같아서 씁쓸한’ 모순적인 느낌이다. 혜성이 지구로 떨어진다는데 사람들은 밈을 만들고, 정치 성향에 따라 믿고 안 믿고를 선택하며, 언론은 그 와중에도 “오늘의 핫이슈”처럼 가볍게 다룬다. 처음엔 “이건 영화니까 가능한 연출이겠지”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곧 떠오른다. 우리가 이미 수없이 겪어왔던 그 순간들. 예를 들어 기후 위기만 해도 그렇다. 40도를 넘어가는 폭염, 한 달에 몇 번씩 발생하는 폭우, 겨울인데 느닷없이 찾아오는 이상 고온처럼 이미 경고음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더 이상 크게 놀라지 않는다. 팬데믹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전 세계가 긴장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무디게, 빠르게 적응했다. 위험과 위협이 너무 자주 발생하는 시대를 살다 보니, 감정을 계속 크게 쓰다 보면 오히려 지치니까 자연스럽게 감정을 닫게 된 것이다. ‘돈룩업’ 속 사람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위험을 대한다. 믿기 싫으니까 외면하고, 부담되니까 농담으로 넘기고, 너무 큰 일이니까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진다. 이 반응은 영화적 과장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사회를 보여주는 현실에 가깝다. 나 또한 작은 예로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화재경보가 울리면 '에이 아니겠지' 하면서 자리에 그대로 앉아 일을 하곤 한다. 서론에서 우리가 느끼는 이 무감각함의 뿌리를 짚었다면, 이제 본론에서는 영화가 그 무감각을 어떻게 해부하고 꼬집는지, 그리고 왜 이 영화가 2020년대에 특히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반복되는 위기가 만들어낸 감정의 마비
우리는 ‘정보가 넘쳐날수록 감정은 줄어든다’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루 종일 핸드폰만 봐도 지구 환경부터 정치 갈등, 경제 불안, 국제 분쟁까지 수십 개의 위기 뉴스가 쏟아진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위험을 한꺼번에 접하면 사람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감정을 닫게 된다. 영화는 바로 이 문제를 아주 직설적으로 건드린다. 대표적인 장면이 언론 토크쇼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제일 현실적으로 와닿았던 장면이다. 과학자들이 세계 멸망을 알리러 출연했는데, 앵커들은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고, 시청률이 떨어질까 봐 위기감 대신 ‘재밌고 가벼운 톤’을 유지하려 한다. 이 장면은 단순히 웃기려는 의도가 아니다. 중요한 사실을 ‘보도’가 아니라 ‘콘텐츠’로 소비하는 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실제로도 우리는 무거운 뉴스가 지나치게 예능적으로 포장되거나, 자극적인 내용 중심으로만 재구성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SNS 역시 무감각을 가속시키는 장치로 등장한다. 영화 속 밈들은 혜성 충돌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위기 경고보다 가벼운 챌린지가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흐름에 맞춰 움직인다. 위기 앞에서 필요한 건 ‘집중’과 ‘판단’인데, 우리는 오히려 스크롤 속에서 감정을 낭비하며 중요한 순간을 놓치곤 한다. 정치권의 반응은 더 극적이다. 현실에서도 큰 문제가 생기면 정치적 계산이 먼저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영화는 이를 조금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대놓고 풍자한다. 그리고 그 풍자의 핵심은 “인간은 결국 자기 이해와 권력 앞에서 얼마나 쉽게 진실을 외면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모든 요소가 쌓여 우리가 느끼는 무감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을 영화는 계속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관객이면서 동시에 영화 속 시민과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처럼 느껴진다. 웃기면서도 어딘가 뜨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도 가끔 현실에서 무거운 상황의 분위기가 싫어 애써 외면하려 웃어보이거나 가벼운 주제로 돌리려고 한적이 있다.
엔딩마저 현실적
영화의 엔딩은 너무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혜성은 결국 지구에 충돌하고, 인간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각자의 식탁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 이 장면이 크게 충격적인 이유는, 우리가 정보를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은 사회’의 최종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무감각함은 단순히 시니컬함이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너무 많은 위험, 너무 많은 자극, 너무 빠른 정보 속에서 감정이 소모된 사람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선택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고. 결국 영화는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은 지금, 진짜로 보고 있나요?” 우리가 위험을 외면하지 않으려면 감정을 되살려야 하고, 판단력을 회복해야 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일을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다시 세워야 한다. ‘돈룩업’은 단순한 풍자극이 아니다. 이 작품은 현대인의 감정이 어떻게 피로해지고, 어떻게 무뎌지고, 결국 어떻게 현실을 놓치게 되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경고문이다. 그리고 그 경고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우리 마음에 오래 남는다. 그 어떤 감동적인 영화보다 여운이 남았던 영화이다. 결국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진짜 메시지는 혜성이나 지구 멸망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을 잃어버린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한 통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