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에 등장하는 가족 관계가 왜 따뜻하기만 한 가족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불편한데도 현실처럼 달라붙는지에 대해, 내가 겪어본 ‘가족 같은 분위기’의 기억을 빌려 써본 글이다. 이 영화의 가족은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완전히 아는 사람들도 아니다. 오래 같이 있었기 때문에 더 쉽게 말이 헝클어지고 가까워서 더 잔인해지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같은 편으로 남아버리는 그 복잡한 결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웃기지만 마음이 가볍지 않고 따뜻하지만 손바닥에 미끄럽게 남는 땀 같은 감정이 남는다. 나는 이 영화가 ‘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때마다, 사실은 내 쪽이 더 찔린다는 걸 안다. 가족은 늘 정답처럼 굴지 않는데, 우리는 가족에게 정답을 자꾸 요구하니까.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동상이몽을 꾸기도 한다. 서로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같은 편에 서있기도 한다. 이런게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는 모습 중 하나 아닐까.
미스 리틀 선샤인 동상이몽
영화 초반부터 이 가족은 계속 같이 붙어 있는데도, 서로에게 닿지 못한다.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말을 너무 많이 한다. 그런데 그 말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향해 날아가지 않고 대부분 자기 방어를 위해 튕겨 나온다. 그게 너무 웃기면서도, 너무 익숙해서 웃음이 금방 사라진다. 나도 가족이랑 밥 먹을 때 “괜찮아?” 같은 말은 하는데, 정작 “나 요즘 좀 지쳤어” 같은 말은 잘 못 꺼냈던 적이 많다. 말하는 순간 분위기가 가라앉을까 봐, 괜히 걱정시키는 사람 될까 봐, 혹은 설명하다가 싸움으로 번질까 봐 그냥 삼키는 거다. 미스 리틀 선샤인의 가족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불안해한다. 아빠는 ‘성공’이라는 단어에 매달려서 자신을 지키고, 삼촌은 이미 무너져 본 사람의 표정으로 조용히 가라앉아 있고 오빠는 침묵으로 세상을 밀어내며, 엄마는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굴러가게 만들려고 애쓴다. 그리고 올리브는 그 모든 어른의 불안을 그대로 보고도 웃으려고 한다. 이 조합이 한 차에 들어가니 대화는 자꾸 빗나가고 농담은 칼날처럼 들리고 침묵은 무겁게 늘어진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들이 ‘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의 가족도 그렇다. 친구였다면 멀어졌을 상황인데, 가족은 일단 같이 이동한다.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현실적인 이유는 바로 그 억지스러운 동행을 숨기지 않아서다. 우리는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 부드럽다고 믿고 싶지만, 사실 대부분은 ‘버티는 동행’에 더 가깝다.
가족의 형태 유지
가족이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지점은, 상처가 “가장 정확한 곳”을 향해 날아간다는 점이다. 타인이면 조심해서 말할 부분을, 가족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더 쉽게 건드린다. 영화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과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건 그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맞아서’일 때가 많다. 나도 가족끼리 다투고 나서 혼자 화장실 문 닫고 앉아 있던 적이 있다. 그때 내 마음을 무너뜨린 건 큰 욕이 아니라, “너 원래 그런 애잖아” 같은 한 문장이었다. 가족은 오래 봤기 때문에 그 문장을 만들 수 있고, 그래서 그 문장은 더 아프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이 불편함을 미화하지 않는다. 갈등이 생기면 예쁘게 봉합하지도 않고, 누군가 멋진 말로 교훈을 정리해주지도 않는다. 대신 ‘그 상태 그대로’ 길을 계속 간다. 이게 현실이다. 가족 문제는 한 번의 대화로 해결되지 않는다. 사과 한마디로 끝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쌓인 상태로 다음 명절을 맞고, 다음 여행을 가고, 다음 기념일을 보낸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가족이니까 사랑해야지” 같은 결론 대신, “가족이라서 더 복잡하다”는 사실을 남긴다. 나는 그게 더 솔직해서 좋았다. 가족이란 관계는 따뜻함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체면, 미안함, 짜증, 의무감, 어쩔 수 없음 같은 감정들이 동시에 굴러가며 겨우 형태를 유지한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그 복잡한 재료들을 숨기지 않고 전부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결국은 '같은 편'
이 영화가 오래 남는 건, 마지막에 갑자기 모두가 다정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관계가 완벽해지지 않고, 사람들의 성격도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가족은 결정적인 순간에 ‘같은 편’으로 서는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은 감동 연출처럼 번쩍이지 않고, 오히려 민망하고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현실의 가족애도 보통 그런 모습이다. 세련되게 사랑하지 못하고, 말을 예쁘게 못 하면서도, 이상한 타이밍에 몸이 먼저 움직여서 옆에 남는다. 나는 미스 리틀 선샤인을 보고 나서 가족에게 갑자기 잘하겠다는 다짐을 하진 않았다. 대신 아주 작은 인정이 생겼다. “우리 가족도 그때 나름대로 버티고 있었겠구나.” “나도 완벽한 가족을 기대하면서,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한테 너무 많은 걸 요구했구나.” 이런 생각은 거창한 화해는 아니지만, 마음의 각을 조금 깎아준다. 그리고 그 정도면 어떤 날에는 충분하다. 결국 이 영화 속 가족 관계의 현실성은, ‘해결’이 아니라 ‘지속’에 있다. 화해하지 않아도 같이 움직이고, 이해하지 못해도 같은 차에 타고, 마음이 따로 놀아도 목적지는 공유한다. 그게 가족이 가진 특이한 생존 방식이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그 방식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불편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지고, 웃기지만 마음 한쪽이 찌릿해진다. 어쩌면 우리는 가족을 떠올릴 때마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같이 떠올리게 되기 때문에, 이 영화가 이상하게 현실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