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바빌론과 영화라는 마법, 시대의 파도, 영원한 이름

by kimibomi 2025. 12. 29.

바빌론 사진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지만, 스크린 속의 찰나는 영원히 박제된다. 나는 가끔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을지 고민할 때마다, 영화 바빌론이 보여주는 그 지독하고도 황홀한 예술의 광기에 깊이 매료되곤 한다. 이 영화는 소리가 없던 영화에 소리가 입혀지던 할리우드의 황금기와 타락을 통해 영화라는 마법이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사로잡는지 보여준다. 기술의 진보라는 이름으로 밀려오는 시대의 파도는 누군가에게는 기회를, 누군가에게는 잔혹한 몰락을 선사하며, 결국 소모되어 사라질지언정 역사에 새겨지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영원한 이름에 대한 갈망을 노래한다. 오늘은 이 화려하고도 비릿한 영화가 나의 가치관과 삶의 욕망에 던진 질문들을 기록해 보려 한다.

바빌론과 영화라는 마법

바빌론은 영화 촬영 현장의 무질서와 혼돈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도, 그 아수라장 속에서 단 한 컷의 완벽한 장면이 탄생할 때의 경외감을 영화라는 마법으로 표현한다. 나 역시 과거에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결과물이 세상에 나왔을 때 느꼈던 그 짜릿한 전율을 기억한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모든 고통을 감내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자들이 누리는 유일한 보상일 것이다. 영화는 비록 그 과정이 추하고 더러울지언정, 결과물은 신성할 수 있다는 예술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여주인공 넬리 라로이가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순간, 주변의 모든 소음은 사라지고 오직 그녀의 존재감만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러한 영화라는 마법은 평범한 인간을 신화 속 주인공으로 탈바꿈시킨다. 나도 현실의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 내가 만든 작업물이나 내가 쓴 글 속에서만큼은 더 나은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무대에서 자신만의 마법을 부리고 싶어 하는 마법사들 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 마법이 지속되는 동안만큼은 우리가 죽음을 잊을 수 있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영화라는마법은 그만큼의 대가를 요구한다. 스포트라이트가 꺼진 뒤의 공허함은 빛이 밝았던 만큼 더 깊고 어둡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내가 좇는 열정이 나를 살리는 동력인지, 아니면 나를 태워버리는 불꽃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게 되었다. 예술은 위대하지만, 그 예술을 품은 인간은 연약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법의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온전한 나로 남을 수 있는 단단한 자아가 필요함을 넬리의 파멸을 보며 뼈저리게 느꼈다.

시대의 파도

무성 영화의 시대가 저물고 유성 영화가 등장하면서, 어제의 스타들은 한순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한다.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파도 앞에 무너지는 잭 콘래드의 모습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이 느끼는 지독한 상실감을 대변한다. 나도 급변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거나, 내가 익혀온 기술들이 구식으로 치부될 때 느꼈던 그 서늘한 소외감을 기억한다. 세상은 멈추지 않고 흐르며, 우리는 그 파도 위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야만 하는 숙명을 지녔다. 시대의 파도는 개인의 재능보다 시스템의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목소리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혹은 발음이 세련되지 못하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배우들을 보며 나는 능력의 정의가 얼마나 상대적인지 생각했다. 나 역시 내가 가진 강점이 어떤 곳에서는 약점이 되고, 약점이 다른 곳에서는 강점이 되는 경험을 하며 세상이 정해놓은 가치 기준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파도는 우리를 삼킬 수도 있지만, 우리가 그 흐름을 읽는다면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게 해 줄 수도 있다. 결국 시대의 파도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그 사람의 마지막을 결정한다. 누군가는 과거를 부여잡고 침몰하지만, 누군가는 비참함을 견디며 새로운 시대의 부품이 되기를 자처한다. 나는 이 잔인한 선택지 앞에서 어떤 길을 갈 것인가 고민했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현재를 부정하기보다, 비록 초라해질지언정 변화하는 세상과 함께 호흡하는 유연함을 잃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는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파도는 멈추지 않기에, 우리도 멈춰 서서는 안 된다.

영원한 이름

영화의 후반부, 매니가 수십 년 뒤 극장에 앉아 영화의 역사를 지켜보며 눈물 흘리는 장면은 인간이 왜 그토록 영원한 이름에 집착하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사라지지만 우리가 만든 이미지는 50년 후에도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나 역시 내 이름이 세상에서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명예욕과, 내가 남긴 무언가가 누군가의 삶에 작은 빛이 되길 바라는 순수한 열망 사이에서 늘 갈등한다. 영원한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죽음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반항이다. 한 평론가가 잭에게 "당신의 시대는 끝났지만, 당신은 영원히 박제될 것"이라고 말하는 대사는 영원한 이름의 본질을 꿰뚫는다. 예술가는 소모되지만 예술은 남는다. 나는 이 비정한 등가교환을 보며 나의 삶이 단순히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가치 있는 것으로 변환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았다. 나도 내가 하는 일이 당장의 수익이나 성공을 넘어, 훗날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살았었지"라고 기억될 수 있는 따뜻한 흔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바빌론은 나에게 인생이라는 영화의 주연 배우로서 어떻게 퇴장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었다. 영화라는 마법에 취해 열정을 쏟되, 시대의 파도 앞에서 겸허해지며, 결국 영원한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진심이었는가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제 결과물의 영속성보다 과정을 즐기는 기쁨을 먼저 찾기로 했다. 우리가 진심으로 오늘을 살아낸다면, 굳이 이름을 남기려 애쓰지 않아도 우리 삶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명장면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넬리와 잭, 매니의 삶을 통해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녹아든 수많은 영혼의 노래를 들려준다. 영원한 이름을 꿈꾸던 그들의 광기는 비극적이었지만 동시에 눈부셨다. 오늘 당신은 어떤 마법을 꿈꾸고 있나요? 혹시 거대한 파도 앞에서 겁을 먹고 무대 뒤로 숨어버리지는 않았는가. 바빌론의 주인공들처럼 때로는 무모하고 때로는 처절하더라도, 당신만의 시퀀스를 끝까지 완주해 보시길 바란다. 마지막 커튼콜이 내려올 때, 당신의 가슴속에 후회 없는 카타르시스가 가득 차오르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