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벨기에 영화 《로제타(Rosetta)》는 지금도 강한 충격과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다르덴 형제 감독의 이 작품은 한 청년 여성의 삶을 통해 노동 문제, 삶의 절박함, 제도의 한계를 극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2026년 오늘날, 청년 실업과 노동 불안정성 문제가 세계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지금, 《로제타》는 단순한 과거의 영화가 아니라 현재를 꿰뚫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 메시지를 사회적·현실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제도와 인간 사이의 간극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로제타를 통해 노동문제를 직시하는 리얼리즘
《로제타》는 주인공 로제타가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과정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는 어떠한 배경 음악도 없이, 로제타의 거친 숨소리와 절박한 발걸음, 숨겨진 감정을 날 것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냅니다. 그녀가 일자리를 잃고, 다시 구직을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은 오늘날 비정규직 청년의 현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로제타는 단순히 "돈이 필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는 일을 통해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그녀에게 일은 생존 이상의 의미입니다. 삶의 구조 자체이며, 무너져가는 자존심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냉정하게 말합니다. 노동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저 역시 학창 시절, 유럽 배낭여행 중 벨기에에서 워킹홀리데이 청년들을 만났을 때, 《로제타》의 현실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 중 다수는 식당, 청소, 베이커리에서 일하면서도 늘 해고 불안을 안고 살고 있었고, 특히 프랑스어가 능숙하지 않은 이민자 청년들은 고용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한 청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자리가 없으면 사람 취급도 안 받아요. 로제타가 나인 것 같아요.” 이 말은 영화가 현실임을 입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로제타》는 화려한 연출도, 감정 유도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분 내내 긴장과 불편함을 유지하는 이유는, 우리가 모두 ‘노동으로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로제타는 실업의 두려움을 넘어, 인간으로 살기 위한 몸부림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우리 사회가 외면하는 노동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합니다.
삶의 절박함과 인간관계의 파괴
영화는 로제타의 하루를 반복적으로 보여줍니다. 구직 → 실패 → 갈등 → 희망 → 다시 실패. 그녀는 작은 희망에 매달리고, 실망에 다시 무너집니다. 여기에 더해, 그녀의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자이며, 트레일러에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갑니다. 가족조차 그녀의 의지가 되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로제타는 전적으로 혼자 생존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뼈아픈 장면 중 하나는, 로제타가 자신의 유일한 친구에게 일자리를 빼앗는 장면입니다. 도덕성과 윤리를 잠시 내려놓고라도, 생존해야 하는 절박함이 그녀를 몰아붙인 것이죠. 그 순간, 저는 한때 겪었던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청년 시절 인턴을 준비하면서, 친했던 동기와 같은 자리에 지원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제가 선발됐습니다. 축하받아야 할 자리에서 저는 오히려 죄책감과 거리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사회는 경쟁을 미화하지만, 절박한 상황에서의 경쟁은 관계를 파괴합니다. 로제타가 보여준 갈등은 단순한 캐릭터 설정이 아닌, 실제 우리가 맞닥뜨릴 수 있는 현실입니다. 또한, 로제타는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모릅니다. 웃지도, 울지도 않고 그저 "해야 할 일"만 합니다. 그녀는 연민이나 공감을 표현할 여유조차 없는, 완전히 외로운 상태입니다. 이는 극단적으로 고립된 청년의 자화상이며, 사회가 어떻게 인간을 기능 중심적으로만 바라보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삶의 절박함이 인간적인 모든 것을 소거할 때, 우리는 무엇으로 남게 되는가. 《로제타》는 이 질문을 관객에게 직접 던집니다.
제도 비판과 ‘보이지 않는 사람들’
로제타는 자신을 위한 복지 혜택이나 지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녀가 택할 수 있는 것은 몸으로 일하는 것뿐입니다. 벨기에는 복지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영화는 제도 밖의 사람들, 제도에 닿지 못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들추어 내며 제도 비판을 합니다. 특히 젊은 여성, 부모의 지원 없이 살아가는 청년, 장애인 혹은 이민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유럽 복지제도 관련 프로그램을 연구하면서 가장 놀랐던 건, 사회안전망이 ‘정보 접근성’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느 나라든 복지 혜택은 존재하지만, 그것을 신청하고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로제타는 법적으로는 보호 대상이지만, 실제로는 보호받지 못합니다. 그녀는 시스템을 ‘신청’할 줄 모릅니다. 시스템은 그녀에게 먼 존재일 뿐입니다. 이 영화는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진 않지만, 매우 정치적입니다. “당신이 법과 제도 안에 있지 않다면, 보호받을 수 없다”는 현실을 무심하게 보여주며, 복지가 얼마나 불균형하고 행정 중심적인지를 드러냅니다. 로제타는 상징입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노력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만, 사실은 제도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노력할 수조차 없는 이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로제타》는 그런 이들의 존재를 일깨우는 작품입니다. 조용하지만 거대한 파문을 남기는 이 영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회 고발서입니다.
《로제타》는 단순한 영화가 아닙니다. 노동, 삶의 존엄, 제도와 사회의 차가운 간극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리얼리즘 작품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현실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이 영화는 “청년실업”이라는 단어 뒤에 가려진, 한 개인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침묵을 대변합니다. 지금 이 시대의 로제타는 누구입니까? 그들을 보려 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다시 인식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연대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