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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피쉬 속 이야기의 마법, 진실과 허구, 마지막 인사

by kimibomi 2025. 12. 30.

빅피쉬 사진

누군가의 삶을 기록할 때, 건조한 사실들만 나열하는 것이 과연 그 사람을 온전히 설명하는 길일까. 나는 가끔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떠올릴 때 실제 있었던 일보다 그 순간의 감정이 덧입혀진 과장된 기억들이 훨씬 더 생생하게 느껴지곤 한다. 영화 빅 피쉬는 평생을 허풍쟁이로 살아온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의 환상적인 모험담을 통해 이야기의 마법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을 영생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아들 윌이 마주하는 진실과 허구 사이의 갈등은 우리가 부모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깊은 통찰을 주며, 영화의 끝에서 이루어지는 아들이 건네는 마지막인 사는 죽음마저 찬란한 전설로 바꾸는 감동을 선사한다. 오늘은 이 동화 같은 영화가 나의 가치관과 삶을 기록하는 태도에 남긴 기록들을 정리해 보려 한다.

이야기의 마법을 보여주는 빅 피쉬

에드워드 블룸은 거인, 마녀, 샴쌍둥이 등 기상천외한 존재들과 만났던 일화를 마치 사실처럼 늘어놓는다. 이러한 이야기의 마법은 팍팍한 현실에 색채를 입히고, 평범한 일상을 거대한 모험으로 탈바꿈시킨다. 나 역시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조금은 과장된 옛날이야기들을 들으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던 기억이 있다. 팩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의 마음이며,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야기의 진정한 가치다. 하지만 이야기의 마법은 현실적인 아들 윌에게는 그저 아버지의 도피나 위선으로 비친다. 나도 한때 원칙과 논리만을 앞세워 주변 사람들의 감성적인 표현을 '비합리적'이라고 치부하며 차갑게 굴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깨달은 것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지어내는 이유는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좀 더 견딜 만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영화는 차가운 진실보다 따뜻한 허구가 때로는 더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가진다는 사실을 몽환적인 영상미로 증명한다. 결국 이야기의 마법은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종말을 극복하는 도구가 된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죽음조차 거대한 물고기로 돌아가는 전설의 마침표로 장식한다. 나는 이 과정을 보며 내 삶의 서사를 어떻게 써 내려갈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나도 내 인생의 고난들을 단순히 고통으로 기록하기보다, 그것을 이겨내고 성장한 나만의 모험담으로 재구성하는 긍정의 힘을 믿기로 했다.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곧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진실과 허구

윌은 아버지의 병세가 깊어지자 그의 진실과 허구를 구분하기 위해 과거의 흔적들을 추적한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진실은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실존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이야기보다 훨씬 더 소박하고 평범한 모습이었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부모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어디까지가 사실일지 의심했던 적이 있지만, 나중에 그것이 부모님이 삶을 지탱하기 위해 붙들었던 소중한 자부심이었음을 알고 숙연해졌던 경험이 있다. 진실은 때로 허구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영화는 진실과 허구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는다. 에드워드에게 그 환상적인 모험들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그가 세상을 바라본 방식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나도 내가 겪은 일들을 기록할 때 내 감정이 섞인 주관적인 관점이 오히려 객관적인 수치보다 그 순간의 진실을 더 잘 대변한다고 믿는다. 삶은 일어난 사건들의 합이 아니라, 그 사건들을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해석했느냐의 총합이다. 허구는 진실을 가리는 장막이 아니라 진실의 핵심을 보여주는 돋보기와 같다. 윌이 아버지의 집에서 발견한 낡은 서류들은 에드워드가 말했던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어버린다. 그는 정말로 마을을 구했고, 정말로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을 쟁취했다. 다만 그 과정에 약간의 소금을 쳐서 맛있는 요리로 만들었을 뿐이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타인의 삶을 평가할 때 '사실 여부'보다 '그가 왜 그렇게 말했는가'를 먼저 헤아리는 유연함을 배우게 되었다. 한 사람의 진심은 팩트 체크가 아닌 공감의 영역에서 비로소 만날 수 있는 법이다.

마지막 인사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한다. 윌은 비로소 아버지의 방식을 받아들여, 병실을 탈출해 강가로 나가 수많은 지인들의 축복 속에 커다란 물고기가 되어 떠나는 아들이 건네는 마지막인사를 완성한다. 나도 이 장면에서 윌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그의 환상 속에 동참해 주는 모습을 보며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부모와 자식 간의 진정한 화해는 서로를 자신의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머무는 세계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장례식장에 나타난 이야기 속 실제 주인공들은 아들이 건네는 마지막인 사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에드워드는 정말로 전설 같은 사람이었으며, 그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남아 영원히 전해질 것이다. 나 역시 언젠가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야 할 때, 그가 남긴 삶의 흔적들을 슬픔으로만 기억하기보다 그가 살았던 찬란한 순간들을 멋진 이야기로 간직하고 싶다는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이야기는 죽음을 이기는 유일한 불멸의 방법이다. 빅 피쉬는 나에게 "당신은 어떤 전설을 남기고 싶은가?"라고 묻는다. 이야기의 마법을 믿으며 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풍요로운 삶,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아들이 건네는 마지막인사를 받을 수 있는 삶.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결과보다는 과정을, 숫자보다는 감동을 기록하는 인생을 살기로 다짐했다. 비록 내가 잡은 물고기가 사실은 조금 작았을지라도, 내 이야기 속에서는 커다란 '빅 피쉬'로 기억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정성껏 나만의 모험을 이어가고 싶다. 영화는 강물을 헤엄쳐가는 커다란 물고기의 모습을 비추며 끝을 맺는다. 아들이 건네는 마지막인사를 받은 에드워드는 더 이상 낡고 병든 노인이 아니라 자유로운 전설이 된다. 오늘 당신의 곁에 있는 부모님, 혹은 친구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면 비웃기보다 그 이야기 뒤에 숨겨진 그들의 꿈과 자부심을 가만히 들어보시길 바란다.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 모두의 평범한 일상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위대한 전설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