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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 노화와 젊음의 대비 잔혹한 세계 본질적 질문

by kimibomi 2025. 12. 13.

서브스턴스 사진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는 단순히 ‘늙음이 두렵다’라는 감정적 서사에서 벗어나, 노화와 젊음을 둘러싼 사회적 압박과 욕망,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산업적 폭력성을 깊숙하게 파고든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몸과 얼굴이 시간 앞에서 변화하는 과정을 비극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사회가 이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잔혹한 현실은 개인의 노화가 곧 ‘상품 가치의 하락’으로 취급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민낯을 반영한다. 나도 엔터테인먼트 산업 종사자여서 그 민낯에 대해 매우 공감하며 시청하였다. 동시에 젊음을 추구하는 욕망이 얼마나 쉽게 조작되고, 소비되고, 파괴되는지를 보여주며 오늘날의 미적 기준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 글에서는 <서브스턴스>가 노화와 젊음이라는 두 축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를 충돌시키며, 결국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깊이 있게 해석해 본다.

서브스턴스 노화와 젊음의 대비

<서브스턴스>의 서사는 주인공이 거울 앞에 서 있는 장면에서 사실상 시작된다. 어쩌면 평범하게 보일 수 있는 이 장면이 영화의 핵심 테마를 함축한다. 주인공은 더 이상 빛나는 스타가 아니며, 카메라 앞에서 ‘아름답다’는 말을 듣던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과 몸에 새겨진 변화를 마주할 때마다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잔혹한 기준을 떠올리게 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노화를 단순한 자연적 변화로 취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화는 ‘사라져가는 존재감의 신호’로 표현되며, 주인공에게는 이 변화가 곧 자신의 정체성 붕괴로 이어지리라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심리적 압박은 사회 구조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극 속 엔터테인먼트 세계는 젊음 그 자체를 상품화하는 시스템이며, 늙어가는 신체는 무대 위에서 밀려나는 순간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주인공이 가진 두려움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이 시스템에서 생존하기 위해 요구되는 잔혹한 현실을 반영한다. 영화는 노화를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사회의 압력과, ‘언제든 대체 가능한 존재’로 취급되는 여성의 처지를 연결해 보여준다. 이런 구조 안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거부감과 불안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후 영화는 젊음이라는 테마를 본격적으로 끌어올린다. 약물을 통해 탄생하는 젊은 ‘또 다른 자신’은 단순한 젊음의 회복이 아니라, 사회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신체적 기준을 거의 절대적으로 구현한 존재다. 이로 인해 노화와 젊음의 대비는 단순한 세대 차이나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존재를 유지할 권리’와 ‘사라져야 하는 존재’의 대비로 확장된다. 주인공이 스스로를 잃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는 결국 “우리는 왜 늙지 않으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관객 앞에 꺼내놓는다. 그 질문을 받은 나는 "늙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잔혹한 세계

영화에서 젊음은 단순한 외모적 상태가 아니라 일종의 ‘자본’처럼 사용된다. 새로 태어난 젊은 존재는 사회가 원하는 거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매끄러운 피부, 균형 잡힌 몸, 활기찬 에너지,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완성된 이미지. 이때 영화는 젊음이 ‘정상’, ‘표준’, ‘이상적 상태’로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주인공의 노화된 모습은 반대로 ‘기능이 떨어진 버전’, ‘대체되어야 할 구식 모델’처럼 취급된다. 이는 단순히 외모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가치와 존재적 위치까지 규정하는 잣대로 작동한다. 분신과 같은 젊은 존재가 등장하면서 두 인물의 대비는 더욱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젊음은 칭찬과 관심을 독점하며 성장하고, 노화된 주인공은 점점 밀려난다. 이 과정은 단순한 경쟁을 넘어, 사회가 젊음을 선택하고 노화를 배제하는 방식이 얼마나 잔혹한지 그대로 반영한다. 이러한 연출은 나 스스로가 늙음을 혐오스럽게 만든다. 나조차도 이 영화를 보면서 젊음에 집착하는 늙은 주인공을 혐오스럽게 생각했다. 영화는 이를 마치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신체 변형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관객이 그 폭력성을 외면하지 못하게 한다. 특히 서브스턴스 약물은 ‘젊음을 다시 얻을 수 있다’는 환상을 압축한 장치로 기능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 환상을 상품처럼 소비하는 사회적 구조를 비판한다. 젊음을 되돌린다는 행위는 결국 노화를 부정하는 행위이며, 나아가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가 된다. 주인공이 분신에게 밀려나는 과정은 곧 ‘내가 만든 젊음에게 잡아먹히는 서사’처럼 보이기 시작하며, 젊음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닌 압력, 공격, 파괴로 변한다. 반대로 주인공의 노화는 끊임없이 결점처럼 재현된다. 사회는 그녀에게 “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요하고, 그녀의 몸은 계속해서 조정·관리·교체의 대상으로만 취급된다. 이 모습은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잔혹한 세계의 문제를 상징한다. 특히 여성에게 요구되는 ‘영원한 젊음’의 기준은 영화 속 과장된 공포 요소들이 없어도 이미 현실 속에서 충분히 잔혹하게 존재한다. 영화는 이 이미지를 극단적으로 시각화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기준이 얼마나 비인간적일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본질적 질문

<서브스턴스>의 결론은 단순히 “노화도 자연스러운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우리가 노화를 어떻게 대하고 있으며, 젊음을 어떻게 숭배하고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이 젊음을 되찾으려는 순간부터 이미 비극은 예정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이 선택은 본질적으로 ‘지금의 나’를 부정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를 극단적인 신체 파괴와 정체성 붕괴로 시각화하며, 젊음이라는 환상이 얼마나 파괴적인 힘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늙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늙음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두려워한다는 사실. 주인공이 느끼는 공포는 연예인의 노쇠가 아니라, 경쟁에서 탈락한다는 낙인,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는 압박,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젊은 대체물에게 빼앗길 것이라는 공포다. 이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서브스턴스>는 젊음을 되찾는 기술이 실제로 가능해진 현실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젊음을 바라며, 왜 노화를 미워하는지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관객에게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영화는 스스로의 몸을 개선하려는 욕망이 얼마나 쉽게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 젊음이란 상품을 소비하는 사회가 얼마나 잔혹한 구조인지 끝까지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이 때문에 <서브스턴스>는 단순한 신체 공포 영화가 아닌, 젊음 강박 시대에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담은 작품으로 남는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두려움을 주는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며 긴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서브스턴스>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