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2006년에 개봉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르게 되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나도 왜인지는 모르게 겨울이 되면 이 영화를 찾곤 한다. 단순한 패션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매년 겪는 감정의 굴곡, 커리어 고민, 인간관계의 변화 속에서 다시 떠오르게 되는 ‘현실적인 성장 서사’라는 특별함 때문이다. 특히 사회 초년생을 지나 성인으로서의 책임과 선택을 반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새로운 메시지로 다가온다. 어떤 해에는 미란다가 이해되고, 또 어떤 해에는 앤디의 혼란에 공감하게 된다. 이렇게 인생의 국면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작품은 흔치 않다. 그래서 우리는 지칠 때, 정리가 필요할 때, 혹은 다시 한번 중심을 잡고 싶을 때 원동력을 얻기 위해 이 영화를 다시 찾게 된다. 결국 이 영화는 한 번의 감상으로 소비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의 여러 순간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가 되어 해마다 우리를 다시 불러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특별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단순히 시대를 풍미한 영화에 머물지 않는다. 개봉 당시에는 화려한 패션과 미란다 프리슬리의 상징적 캐릭터로 주목받았지만, 그보다 깊은 이유가 있기에 우리는 시간의 격차를 뛰어넘어 이 작품을 다시 찾아보게 된다. 해가 바뀌고 나의 위치가 바뀌며, 책임이 늘어나거나 관계가 정리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끝낼 때마다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년 성장하고, 고민하고, 흔들린다. 그래서 작년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던 장면이 올해의 나는 이해하게 된다. 특히 미란다의 냉철함을 ‘악’으로만 보던 관점이 어느 순간 ‘프로페셔널의 고독’으로 바뀌기도 한다. 앤디의 선택 앞에서 왜 그렇게 흔들렸는지, 왜 그런 결말을 택했는지 생각하게 되는 시점도 달라진다. 이처럼 인생의 국면마다 영화의 텍스트가 재구성되는 경험은 다른 작품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함이다. 게다가 영화의 흐름 자체가 가진 리듬이 ‘지쳐 있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어루만진다. 복잡한 설명 없이도, 단순 명료한 구조 속에서도 깊이를 잃지 않으며, 화려함과 현실의 대비는 언제나 시청자의 마음 한구석을 건드린다. 그래서 우리는 바쁜 한 해를 보내고 다시 방향을 잡고 싶은 순간, 익숙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은 순간, 이 영화를 다시 선택하게 된다. 매년 다시 찾아오게 되는 영화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그 이유를 품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원동력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해마다 다른 감정이입’의 경험이다. 20대 초반에 이 영화를 본 사람은 앤디의 당황과 벅참에 공감하며, 30대가 되어 다시 보면 미란다의 말 속에 담긴 현실성과 철저함이 이해된다. 20대 초반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앤디가 너무 불쌍하고 힘들어 보였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30대가 되어 보니 앤디의 투정은 어느새 나를 짜증나게 하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나이가 들수록 조직 내에서의 역할이 변하고 책임이 커지기 때문에, 과거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장면들도 어느 순간 ‘프로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처럼 보인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정서적 정리감이다. 미란다가 보이는 완벽주의와 통제력은 얄미우면서도 묘하게 안정감이 있고, 앤디의 변화 과정은 어느 순간 내 삶의 리셋 버튼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커리어 목표가 흔들리는 순간, 나의 우선순위가 헷갈리는 시점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왜 내가 이 삶을 선택했는가’를 되짚게 만드는 힘이 있다. 패션이라는 화려한 소재 또한 매년 다르게 보인다. 처음에는 단순히 멋지고 예쁜 옷에 시선이 갔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패션이 캐릭터의 감정과 위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언어임을 깨닫게 된다. 미란다의 단단한 실루엣은 권력과 고독을, 에밀리의 날 선 코멘트는 야망과 불안을, 앤디의 스타일 변화는 성장과 흔들림을 보여준다. 이렇게 ‘의상’이라는 비언어적 요소까지 해마다 새롭게 읽히기 때문에 재감상의 즐거움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앤디의 선택이 해마다 다른 메시지를 전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해에는 그녀의 용기가 부럽고, 어떤 해에는 그 선택이 너무 쉽게 느껴지고, 또 다른 해에는 그 결단이 실은 굉장히 성숙한 결정이라는 걸 깨닫는다. 즉, 이 영화는 나의 현재 상태를 반영하는 일종의 심리 테스트 같은 존재가 된다. 보기 전의 나와 보고 난 후의 내가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 그 감정이 우리가 매년 다시 이 영화를 찾게 되는 원동력이다.
메시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가 아니다. 이 작품은 삶의 속도와 우리가 겪는 고민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앤디와 미란다의 관계는 단순한 상사-직원 관계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끌어내는 장치다. 어느 해에는 미란다가 멀게 느껴지고, 또 어느 해에는 그녀가 어쩐지 안쓰럽고 강인해 보인다. 이런 감정의 스펙트럼은 관객의 삶의 단계에 따라 달라지며, 그 변화를 확인하는 과정이 일종의 성장 점검표처럼 기능한다. 또한 이 영화는 현실의 피곤함을 해석해주는 동시에, 그 피곤함을 견딜 힘을 부드럽게 던져준다. 패션이라는 예술적 요소는 시각적 위로를 주고, 인물들의 선택은 현실적인 통찰을 준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메시지가 시기마다 변한다는 점이 놀랍다. 어떤 해에는 ‘버텨라’는 말처럼 들리고, 또 어떤 해에는 ‘멈추고 다시 생각해도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결국 이 영화는 매년 우리의 인생을 다시 비춰보게 만드는 거울 같은 존재다. 그래서 다시 본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고, 매년 같은 자리에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인생이 계속 변하듯, 이 영화가 던지는 울림도 계속 변한다. 그래서 우리는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아마 다시 이 영화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