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우리의 열정은 언제부터 마법처럼 사라져 버린 걸까. 나는 가끔 거울 속에서 생기 없는 눈빛으로 하루를 버텨내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가 보여주는 그 도발적이고도 서글픈 실험에 묘한 해방감을 느끼곤 한다. 이 영화는 인간에게 부족한 혈중 알코올농도를 채워야 한다는 결핍의 증명을 통해 무너져가던 중년 교사들이 일상의 활기를 되찾으려는 과정을 그린다. 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억눌린 자아를 깨우는 일상의 활력은 우리에게 삶을 다시 사랑할 용기를 주며,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틴의 뜨거운 마지막춤은 인생의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묻는다. 오늘은 이 짜릿하고도 씁쓸한 영화가 나의 가치관과 삶의 권태에 남긴 기록들을 정리해 보려 한다.
결핍의 증명으로 보는 어나더 라운드
주인공 마틴과 친구들은 노르웨이 철학자의 가설을 빌려, 인간은 0.05%의 알코올 농도가 부족한 채 태어났다는 결핍의 증명에 나선다. 이는 단순히 술을 마시기 위한 핑계가 아니라, 열정도 의미도 잃어버린 채 화석처럼 굳어버린 자신들의 삶을 구원하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다. 나 역시 사회가 요구하는 '멀쩡한 성인'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느라, 내 안의 순수한 흥분과 호기심을 억누르며 살았던 무미건조한 시간들이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무언가 결핍된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틴은 술기운의 도움을 빌려 학생들과 소통하고 활발한 수업을 이끌며 결핍의 증명에 성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적정 농도를 유지하려 애쓰는 그들의 모습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나도 외부의 자극이나 타인의 인정으로 내 공허함을 채우려 했을 때, 일시적인 고양감 뒤에 찾아오는 더 큰 불안을 경험했던 적이 있다. 영화는 우리가 채워야 할 진짜 결핍이 과연 혈관 속의 알코올인지, 아니면 삶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인지 집요하게 질문한다. 결국 선을 넘어버린 실험은 결핍의 증명이 아닌 파멸로 이어진다. 누군가는 삶을 회복하지만, 누군가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 나는 이 비극적인 과정을 보며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나를 지배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진정한 충만함은 외부에서 주입하는 물질이 아니라, 내 안의 공허함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데서 온다.
일상의 활력
실험 초기, 마틴의 삶에 찾아온 변화는 눈부시다. 가족들과의 대화가 살아나고 학생들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하는 과정은 일상의 활력이 인간에게 얼마나 절실한 영양소인지를 보여준다. 나 역시 무언가에 미쳐있던 시절의 에너지를 떠올리며, 지금의 내가 잃어버린 것이 단순히 젊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뜨거운 태도였음을 반성하게 되었다. 일상의 활력은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온도를 높여주는 마법과 같다. 영화는 일상의 활력을 되찾기 위한 수단으로 술을 선택했지만, 그것이 주는 해방감 이면의 독성을 숨기지 않는다. 마틴이 교실에서 아이들과 진심으로 교감하는 장면은 아름답지만, 그것이 맨 정신으로는 불가능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나도 내 본연의 모습으로는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아 무언가로 나를 포장하며 활기찬 척했던 비겁한 순간들이 있었다. 진짜 활력은 취기 어린 흥분이 아니라, 내 삶의 비루함까지도 기꺼이 껴안을 수 있는 단단한 정신에서 나온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이 느꼈던 그 짧은 전성기는 일상의활력이 주는 중독성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삶이 너무나 지루해서 견딜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다시 타오르고 싶어 한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권태는 죄가 아니며, 그 권태를 깨뜨리려 노력하는 행위 자체가 인간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는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비록 그 방식이 서툴고 위험할지라도 말이다.
뜨거운 마지막 춤
영화의 엔딩에서 마틴이 항구의 학생들 사이에서 추는 뜨거운 마지막춤은 인생의 모든 모순을 함축한 명장면이다. 친구의 장례식을 치르고 온 슬픔과 다시 삶으로 복귀한 기쁨이 뒤섞인 상태에서, 그는 오직 몸짓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폭발시킨다. 나도 이 장면에서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을 느꼈는데, 이는 실패와 성공이 뒤엉킨 지저분한 인생일지라도 결국 끝까지 춤추며 나아가야 한다는 무언의 응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뜨거운 마지막춤은 중력을 거스르는 도약이자, 자신을 짓누르던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의 의식이다. 마틴은 더 이상 완벽한 교사도, 완벽한 아버지도 아니지만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허공을 가른다. 나도 내 삶이 엉망진창이라고 느껴질 때, 오히려 그 엉망인 상태 그대로를 인정하고 나만의 리듬으로 세상을 향해 뛰어들고 싶다는 용기를 얻었다. 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내 몸으로 던지는 마지막 고백이다. 어나더 라운드는 나에게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축제로 만들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결핍의 증명을 위해 방황하고 일상의 활력을 위해 위험을 감수한 뒤 마주하는 뜨거운 마지막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인생이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면서도 끝내 넘어지지 않고 리듬을 타는 과정임을 배웠다. 세상이 정해놓은 농도가 아니라,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나만의 농도를 찾아 오늘 하루도 신나게 춤추며 살아가고 싶다. 영화는 바다를 향해 도약하는 마틴의 정지 화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가 물속으로 떨어질지, 아니면 하늘로 날아오를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뜨거운 마지막춤을 추며 자신만의 세상을 향해 몸을 던졌다는 사실이다. 오늘 당신의 일상은 어떤 농도인가요? 혹시 너무 맑은 정신으로 세상의 고통을 견디느라 자신을 메마르게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밤에는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고 당신만의 작은 춤을 춰보시길 바란다. 그 몸짓 하나가 당신의 굳어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할 마법의 시작이 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