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되돌리고 싶은 순간을 마주하곤 한다. 나 역시 예전에는 사소한 실수 하나에 밤잠을 설치며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생기기를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다. 영화 어바웃 타임을 처음 보았던 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친구와 사소한 오해로 다투고 나서 자책하며 침대에 누워 이 영화를 틀었는데, 주인공 팀이 깨닫게 되는 인생의 가치가 내 마음을 세게 때렸다. 단순히 시간을 되돌리는 판타지가 아니라, 결국 오늘이라는 평범한 하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는 영화였다. 특히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과의 화해 과정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이 글을 통해 내가 느꼈던 감정의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어바웃 타임 속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
영화의 시작은 주인공 팀이 성인이 된 날, 아버지로부터 가문의 비밀을 듣게 되면서 시작된다. 가문의 남자들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믿기 힘든 사실을 말이다. 사실 나도 이 장면을 보면서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우리 아버지는 유독 과묵하신 편이라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 갇혀 지냈다. 아버지의 침묵이 나에 대한 무관심인 줄로만 알았다. 사춘기 시절에는 그런 아버지의 태도가 서운해 일부러 방 문을 걸어 잠그고 대화를 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속 팀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시간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주며 보여주는 그 깊은 애정은, 내가 보지 못했던 우리 아버지의 뒷모습을 다시금 보게 만들었다. 팀은 시간을 되돌려 사랑을 쟁취하고 실수를 바로잡지만, 결국 아버지가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순간만큼은 시간을 되돌려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도 예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아무리 후회해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왜 좀 더 살갑게 굴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으로 긴 시간을 보냈다. 영화 속에서 아버지가 팀에게 건네는 마지막 조언은 참으로 뭉클하다. 하루를 두 번 살아보라는 것. 처음 살 때는 긴장과 걱정 때문에 보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두 번째 살 때는 온전히 느껴보라는 조언이었다. 이 장면을 보며 나는 내가 가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과의 관계도 사실은 내가 그들의 언어를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족이란 존재는 때로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타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 불완전함조차 우리가 사랑해야 할 시간의 일부라고 말한다. 팀이 과거로 돌아가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해변을 걷거나 탁구를 치는 장면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특별한 대화가 없어도 그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랑이 전달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당장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 통 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 소중한 장면이었다.
인생의 가치
팀은 초반에 자신의 능력을 오로지 연애를 하거나 민망한 상황을 피하는 데 사용한다. 나도 만약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시험 답안을 고치거나 면접에서 실수한 부분을 지우는 데 급급했을 것이다. 혹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했던 흑역사를 지우기 위해 수백 번이고 과거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며 보여주는 인생의 가치는 그런 사소한 이득이나 완벽함에 있지 않았다. 팀이 메리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평범한 직장 생활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그는 점점 시간 여행의 횟수를 줄여나간다. 아니, 아예 시간 여행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은 과거를 바꿈으로써 잃어버릴 수 있는 너무나도 위험하고 소중한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한참을 멈춰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늘 더 나은 미래, 더 완벽한 결과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산다. 나 역시 "이것만 끝나면 행복해질 거야", "돈을 이만큼 모으면 그때부터 즐겨야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진정한 인생의 가치가 특별한 성취가 아니라, 비 오는 날의 엉망진창인 결혼식이나 아이의 웃음소리, 출근길에 마주치는 이웃의 인사 같은 평범한 순간들에 있다고 역설한다. 팀의 결혼식 날, 비바람이 몰아쳐 천막이 날아가고 하객들의 옷이 다 젖었음에도 불구하고 팀과 메리가 환하게 웃는 장면은 내 인생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다. 그들은 날씨라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 앞에서도 서로를 보며 행복해했다. 그 장면을 보며 예전에 비를 쫄딱 맞으며 친구들과 길을 걸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옷이 젖고 신발이 망가지는 게 싫어 짜증만 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만큼 깔깔거리며 웃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완벽함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 오히려 예상치 못한 변수와 실수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배웠다. 결국 우리는 모두 시간 여행자다. 어제라는 과거를 지나 오늘을 살고 내일로 나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다.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인 잣대에서 벗어나 삶의 과정 자체에 집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인생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평범한 하루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팀은 이제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그는 마치 자신이 그날을 위해 특별히 시간을 되돌려 돌아온 사람인 것처럼, 매일매일의 평범한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편의점 직원의 불친절함에 미소로 화답하고, 바쁜 업무 중에도 창밖의 풍경을 한 번 더 감상하는 그의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그것은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그저 마음가짐의 한 끗 차이였다. 나도 이 영화를 본 뒤로 작은 습관 하나를 만들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만 보는 대신,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거나 오늘 하루 감사했던 일을 세 가지만 떠올려 보는 것이다. 생각보다 평범한 하루 속에 숨겨진 보석 같은 순간들이 많았다. 카페에서 건네받은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온기나,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 그리고 버스 창가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 같은 것들 말이다. 예전의 나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것들이 이제는 내 행복의 근원이 되었다.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모여 내 삶의 색깔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어바웃 타임은 판타지 영화의 탈을 쓴 철학 책과도 같다.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초능력자보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아는 평범한 사람이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새로운 시간을 선물 받는다. 혹시 지나간 실수를 후회하거나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느라 지금 곁에 있는 행복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팀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오늘이 마치 시간을 되돌려 다시 찾아온 소중한 기회인 것처럼 살아보면 어떨까. 그렇게 쌓인 평범한 하루들이 모여 결국 우리의 위대한 일생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과거를 후회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일 마주할 새로운 아침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거나 보신 지 오래되었다면 오늘 밤 다시 한번 감상해보길 권한다. 전과는 다른 깊은 울림이 당신의 가슴 속에 남을 것이며, 영화가 끝난 뒤 창밖의 풍경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이 곧 기적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