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가까웠던 이웃들이 한순간에 나를 사냥감으로 여기는 포식자로 변한다면 그 공포를 어떻게 견뎌야 할까. 나는 평소에 타인의 평판이나 소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라, 영화 더 헌트가 보여주는 한 남자의 파멸 과정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왔다. 이 영화는 유치원 교사 루카스가 아이의 사소한 거짓말에서 비롯된 의심의 바이러스에 의해 평온했던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비극을 그려낸다. 마을 전체를 집어삼킨 집단적 광기는 한 개인의 진실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며, 결국 법적인 결백이 입증된 뒤에도 회복되지 않는 무너진 진실의 잔혹한 흔적을 추적한다. 오늘은 이 영화가 우리 사회의 정의감 뒤에 숨겨진 폭력성에 대해 던진 질문들을 기록해 보려 한다.
더 헌트의 시작, 의심의 바이러스
영화 더 헌트는 루카스를 짝사랑하던 어린 소녀 클라라의 작은 거짓말에서 시작된다. 아이의 순수함을 맹신하는 어른들의 태도는 이 사소한 오해를 치명적인 의심의 바이러스로 변모시킨다. 나 역시 예전에 누군가 던진 가벼운 농담이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사실처럼 굳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소문의 무서움을 체감했던 적이 있다. 한번 퍼지기 시작한 의심의 바이러스는 논리나 증거로도 쉽게 차단되지 않으며, 사람들의 편견을 자양분 삼아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한다. 루카스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된 마을 사람들의 귀에는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다. 평소 다정하고 성실했던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오직 자신들이 보고 싶은 괴물의 모습만을 루카스에게 투영한다. 나도 직장에서 사소한 실수가 부풀려져 능력 전체를 의심받았던 경험이 있는데, 그때 느꼈던 억울함과 고립감은 의심의 바이러스가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알게 해 주었다. 영화는 보이지 않는 의심이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잔인하게 한 사람을 난도질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결국 의심의 바이러스는 루카스의 친구들과 연인조차 그를 등지게 만든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할 관계들이 의심이라는 불씨 하나에 재가 되어버리는 광경은 인간관계의 연약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나는 이 과정을 보며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얼마나 얇은 유리판 위에 서 있는가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꼈다. 바이러스는 일단 퍼지면 숙주를 죽여야만 멈추듯, 마을 사람들의 의심은 루카스의 사회적 생명을 끊어놓고 나서야 잠시 숨을 고른다.
집단적 광기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아이를 보호한다'는 정의로운 목적을 내세우며 루카스에 대한 가학적인 행위를 정당화한다. 이러한 집단적 광기는 개인이 가졌던 최소한의 이성마저 마비시키고, 군중의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대담함을 부여한다. 나도 군중 심리에 휩쓸려 특정 인물을 비난하는 익명의 댓글에 동조하거나 방관했던 적은 없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집단적 광기 안에서 죄책감은 분산되고, 가해의 쾌감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루카스가 마트에서 물건을 사지 못하게 방해받고 폭행당하는 장면은 집단적 광기가 일상 속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제의 다정한 이웃이 오늘의 사냥꾼으로 돌변하는 모습은 공포 영화보다 더 소름 끼치는 전율을 선사한다. 나 역시 집단 내에서 소수 의견을 냈다가 은근한 따돌림을 당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때 느꼈던 다수의 횡포는 한 인간의 의지를 꺾어놓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집단이 가진 도덕적 우월감이 어떻게 한 개인을 사냥감으로 전락시키는지 냉정하게 조명한다. 가장 소름 돋는 지점은 루카스의 아들까지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다. 집단적 광기는 대상뿐만 아니라 그와 연결된 모든 주변부까지 초토화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휘두르는 총구가 무고한 생명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며, 오직 집단의 분노를 해소하는 데만 집중한다. 나는 이 광기 어린 사냥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가 정의를 구현한다는 명목하에 또 다른 폭력을 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질문하게 되었다.
무너진 진실
시간이 흘러 루카스의 무죄가 밝혀지고 일상으로 복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이미 무너진 진실의 파편들로 가득하다. 겉으로는 화해한 듯 웃고 있지만, 여전히 그를 바라보는 이웃들의 눈빛에는 의구심이 서려 있다. 나도 한번 깨진 신뢰를 회복하려 애썼으나, 아무리 노력해도 예전과 같아질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깊은 좌절을 맛보았다. 무너진 진실은 보수되지 않는 건물처럼 늘 무너질 위험을 안고 위태롭게 서 있을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숲에서 사냥하던 루카스를 향해 누군가 쏜 실제 총알은 무너진 진실이 가져온 영구적인 위협을 상징한다. 사건은 종결되었을지 몰라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은 의심의 불꽃은 꺼지지 않은 채 언제든 그를 사냥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 역시 타인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지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진실이 밝혀져도 상처 입은 명예와 짓밟힌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무너진 진실의 가장 비극적인 지점이다. 더 헌트는 우리에게 타인을 향한 시선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동반하는지 묻는다. 집단적 광기에 휩쓸려 누군가의 삶을 사냥하는 포식자가 되기는 쉽지만, 무너진 진실을 다시 세우는 일은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내가 가진 확신이 타인에게는 총구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 비록 세상이 자극적인 소문에 열광할지라도, 끝까지 진실을 확인하려 노력하고 함부로 돌을 던지지 않는 태도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위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루카스를 겨냥했던 그 마지막 총성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 누군가를 향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경계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