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히든피겨스와 현대인 연대 실화라는 힘

by kimibomi 2025. 12. 17.

히든피겨스 사진


나는 오늘 영화 히든 피겨스가 왜 시간이 지나도 계속 회자되는지, 그리고 왜 실화라는 점이 이 영화를 더 강하게 만드는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단순히 “감동적인 실화 영화”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히든 피겨스는 누군가의 위대한 성공담이라기보다 회사와 사회 속에서 조용히 자기 역할을 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히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경험한 30대라면, 영화 속 장면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현대인의 모습들과 많이 닮아있다. 그리고 히든 피겨스 작품 안에서 연대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나와 직장인들을 보는 것 같다. 이 영화가 실화라는 힘은 여기서 온다. 나와 비슷한 모습의 영화 캐릭터가 실화라는 점에서. 그래서 히든 피겨스는 보고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보고 나서 한동안 마음에 남는 영화다.

히든피겨스와 현대인의 모습

히든 피겨스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말하면 기대보다 차분한 영화라는 인상이 먼저 들었다. 큰 사건이 연달아 터지거나, 감정을 몰아붙이는 장면은 많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마음이 오래 남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영화 속 이야기들이 너무 현실과 닮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 이 일 꽤 잘하고 있는데, 왜 아무도 크게 신경 안 쓰지?” 회의 자료를 준비하고, 숫자를 맞추고, 문제 생기면 뒤에서 수습하는 역할은 늘 같은 사람에게 돌아온다. 그런데 정작 눈에 띄는 건 앞에 나서 있는 사람들이다.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들도 정확히 그런 위치에 있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점은, 이런 상황을 억지로 미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냥 현실의 우리 같은 현대인의 모습이다. 주인공들이 늘 긍정적이거나, 매번 멋진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친 표정, 답답한 표정이 더 자주 나온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이 영화의 무게를 한 단계 더 올려준다. 실화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이미 충분히 강력하다.

연대의 힘

히든 피겨스가 실화라서 더 와닿는 이유는, 영화 속 인물들이 특별한 환경이 아닌 ‘회사’라는 공간 안에 있기 때문이다. NASA라는 이름 때문에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영화 속 구조는 우리가 아는 조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위에는 결정권자가 있고, 그 아래에는 실무를 맡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중요한 일일수록 이름 없이 처리되는 경우도 많다. 캐서린 존슨은 계산 실력이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그 능력을 마음껏 쓰기까지 많은 장벽을 넘어야 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 경험이 떠올랐다. 처음 입사했을 때, 분명 일을 잘하고 싶어서 질문도 많이 하고,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늘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한테 시키면 알아서 하니까 모든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일을 시켜서 더 많은 일이 쌓이는 상태였다. 히든 피겨스 속 인물들도 비슷했다. 잘한다는 이유로 더 많은 일을 맡고, 그만큼 더 보이지 않게 된다. 이 영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차별이나 불합리를 과하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따로 떨어진 화장실, 제한된 회의 참석, 이름 없이 불리는 역할들이 바로 그런 장면들이다. 이런 장면들은 큰 사건처럼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회사에서 겪는 불편함도 대부분 이런 식이기 때문이다. 누가 대놓고 무시하지 않아도, 구조 자체가 사람을 밀어내는 경우가 많다.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들은 이 구조를 한 번에 바꾸지 않는다. 큰 목소리를 내지도 않고, 드라마틱한 반전을 만들지도 않는다. 대신 하루하루 자기 일을 해낸다. 이 부분이 특히 30대에게 크게 와닿는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알게 된다. 현실에서는 멋진 한 방보다, 계속 버티는 힘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이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짚는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이들이 서로를 경쟁 상대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자 다른 위치에 있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은근히 비교하게 되고, 괜히 예민해질 때도 많다. 하지만 히든 피겨스는 연대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이 역시 실화이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다. 실제로 그렇게 버텨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화라는 위로

히든 피겨스는 시간을 두고 볼수록 더 좋은 영화다. 처음 봤을 때는 ‘괜찮은 실화 영화’ 정도로 느껴질 수 있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가 들수록 이 영화가 다르게 다가온다. 예전에는 감동 포인트로 지나쳤던 장면들이, 어느 순간 현실적인 고민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나 역시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지금의 내 위치를 떠올리게 됐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계속 가도 되는 걸까 하는 고민들. 히든 피겨스는 이런 질문에 뚜렷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조용히 말해준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당장은 드러나지 않아도,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실화라는 사실은 이 메시지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이 이야기들이 실제로 존재했고, 실제로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히든 피겨스는 희망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건네준다. “이런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 화려한 성공 스토리에 지친 사람이라면, 히든 피겨스는 분명 다른 감정으로 다가올 것이다. 조용히 자기 일을 해온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말한다. 당신의 자리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그래서 히든 피겨스는 실화이기에 더 강력하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영화로 남아 있다.